동묘(동관왕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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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삼국시대 관우사당 주변볼꺼리

서울 동관왕묘(서울 東關王廟) 또는 동묘(東廟)는 중국 삼국시대(중국) 촉한의 장수 관우, 즉 관왕을 모신 관왕묘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묘앞역[1] 근처에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줄임말을 써 '동묘'[2]라고 부르기도 하고 공자를 모시는 문선왕묘(文宣王廟)를 줄여 부르는 문묘(文廟)에 대응해 무묘(武廟)라고도 불린다.

동관왕묘 금동관우좌상(東關王廟 金銅關羽坐像)

동묘(동관왕묘)

관우(關羽, 160~219)는 중국 촉(蜀)의 장수이지만, 그의 사후 당송대 이후 신(神)으로 숭앙되어 중국 각지에 관제묘(關帝廟)가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1597년 정유재란 이후 관왕묘가 세워지기 시작하였고, 동관왕묘는 명 황제와 조선 선조의 합심과 한중 장인의 기술로 1601년 완공되었다. 동관왕묘 정전 내부 중앙에는 화려한 단청이 칠해진 당가(唐家)가 세워져 있고, 당가의 내부 중앙에는 도금된 <금동관우신상>이 용상(龍床) 위에 앉아 있다. 관우상은 정전 중앙에 있으며 앞쪽 좌우로는 형주에서 관우를 모신 관평, 조루, 주창, 왕보가 관우상을 호위하듯이 서 있다. 특히 동관왕묘에서 모셔지는 금동관우좌상은 구리 4천여 근(약 2.4 t)을 들여 만든 높이 2.5 m 미터짜리 거대한 황금색 금동신상으로, 조선시대 관우상 중 가장 크다. 1601년에 제작되었는데, 영조통기(營造通記)에 따르면 명나라 장수 10명이 풍로 10개에 구리 3800근을 녹이려다가 한 번 실패하고, 감관 한빈(韓斌)이 조선의 구리장인을 모아 300근을 더 넣고 녹여서 제조했다고 한다. 즉, 한중합작으로 만들어진 명작인 셈이다.

보물 제142호

동묘(동관왕묘)

서울 흥인지문(보물 제1호) 밖에 있는 동관왕묘(東關王廟)는 중국 촉한의 유명한 장군인 관우에게 제사지내는 묘이다. 동관왕묘를 짓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가 왜군을 물리치게 된 까닭이 성스러운 관우 장군께 덕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인데, 명나라의 왕이 직접 액자를 써서 보내와 공사가 이루어졌다. 동관왕묘는 선조 32년(1599)에 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601년에 완성되었다. 현재 건물 안에는 관우의 목조상과 그의 친족인 관평, 주창 등 4명의 상을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6칸이고 지붕은 T자형의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지붕 무게를 받치는 장식은 새의 부리처럼 뻗어 나오는 익공계 양식이다. 평면상의 특징은 앞뒤로 긴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과 옆면과 뒷면의 벽을 벽돌로 쌓았다는 점이다. 또한 건물 안쪽에는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데, 이와 같은 특징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국의 다른 건축들과 비교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볼꺼리 동묘시장

동묘(동관왕묘)
동묘(동관왕묘)

이곳이 빈티지로 뜬 이유는 동대문운동장 철거 후 서울 풍물시장으로 옮기지 않은 중고품 노점들이 모였기 때문으로, 국내외 연예인들이 소개해 더욱 유명하다. 구제 특성상 흥정과 물건더미 탐색이 상시 이루어지고, 심지어 전문 꾼들은 좋은 물건을 확보하고자 새벽부터 조명에 의존해 방문한다. 2010년대 후반부터 빈티지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 조명을 받고 있다. 일례로 해외 유명 디자이너인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SNS에 동묘에서 한 노인이 입은 옷을 입은 모습을 올렸는데 이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키코는 여기서 받은 영감으로 디자인한 옷들을 선보였는데 정말로 동묘가 보이는 모습이 많이 나와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었다.

開催時間09:00 ~ 18:00
所要時間2~3시간
休館日연중무휴
入場締切폐장 1시간
主な内容관람
お問い合わせ종로구(02-2148-2034)

特徴

관우 사당, 벼룩시장, 구제시장, 완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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